선배는 내 운명의 카드를 알려주겠다며 생년월일을 묻는다. 평일 오후의 역사 박물관 뒷편. 가을은 점점 짧아져 ‘가을이네’하고 말로 뱉을 때만 잠깐 스친다. 나는 첫 회사였던 출판사에서 선배를 만났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던지는 농담이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하는 나는, 선배가 던졌던 농담에서 나와 같은 파장을 느꼈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부서가 달라 정작 선배라 부른 적이 없었건만, 회사를 나온 뒤로 나에게 그의 호칭은 늘 선배였다. 마음 공부를 좋아하는 그는 별자리와 사주를 거쳐 이번엔 타로를 공부한다 했다. 순간 미간이 좁아지면서 떠오른 의문을 마른 세수로 빠르게 씻어내고 순순히 태어난 날을 답한다.
“웃긴다. 너 전차야. 전차인데 달리질 못하고 있네.”
역술인 같은 말투에 잠깐 멈칫했지만 방금 전까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다 같은 말을 주절거렸던 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진지해진다. 선배의 풀이가 이어진다. 뭔가를 해내야하는 성미인데 그걸 못하게 붙드는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난 요즘 아버지 생각을 다시 해봐. 내가 덮어두고 있는 것이 실은 꼭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해서. 넌 가족에 대해 그런 거 없니?”
그 말을 듣자마자 오래 잊고 있던 장면이 바로 오버랩된다. 혀와 입술이 나 같지 않은 템포로 간신히 말을 좇는 것을 선배는 수정구 다 아는 듯이 관대하게 바라본다.
나와 아버지 둘만 있던 여름방학 오후. 노계와 낙지를 빨갛게 한 솥에 끓인 것을 아버지는 요리라며 먹어보라고 한다. 나는 그 요리라는 말이 거슬린다. 아버지는 너무 이른 나이에 명예 퇴직을 당했다. 돈 버는 재주가 유난히 없던 그는 준비되지 않은 퇴사 이후 시행착오가 잦았다. 가족들 고생은 안 시키겠다고 술을 마신 밤마다 앵무새처럼 되풀이 했지만, 가족이 나에게 달려있다는 인생의 전제는 아버지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냉혹한 것이었다. 그런 사정을 알 턱이 없던 나는 그간 부엌에 들락거린 적도 없던 이가 식당을 차리겠다며 겨우 몇 시간을 낑낑 대더니 요리라고 명명하는 것이 못견디게 한심스러웠다.
나는 아버지를 싫어했다. 특히 그 무능함과 막무가내 성미를. 냄비 밖의 넘친 국물 자국을 보며 꼬인 심사를 숨기지 못한 나는 툴툴대는 말로 빈정댄다. 아버지는 생전 처음 보는 얼굴로 화를 버럭 낸다. 그날의 장면은 선명히 떠오르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준 말은 복기하지 못한다. 기억의 영사기를 아무리 돌려도 나도 아버지도 무성영화처럼 입만 뻐끔 댄다.
그렇게 여유로웠던 적도 없었으면서도, 지금보다 궁핍해질 수 있다는 불안은 그 무렵 꿈마다 집요하게 얼씬거렸다. 그게 선배가 말하는 전차 바퀴를 가로 막고 있었나. 의미 부여가 습관인 나는 기이한 흥이 붙어 아버지와의 악연에 대해 계속 떠든다.
그걸 먹었던가. 먹다 버렸던가. 맛만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닭은 질겼고, 양념은 가루가 많아 텁텁했다. 닭껍질의 오돌도톨한 표면을 떠올리니, 내 안 어딘가가 곤두선다. 들큰한 냄새가 채운 어둑한 식탁, 질긴 살코기를 씹으며 단단히 다짐했었구나.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것에 반대에는 무엇이 있는가. 어린 나도 지금의 나도 대답하지 못한다. 불현듯 말이 멈췄으나 선배는 그 뒤를 더 묻지 않는다.
해가 떨어지며 쌀쌀해졌다. 우리는 가을이 짧긴 짧다고 말하며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