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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말을 못 하거나 안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생계를 위한 ‘기술적 말하기’와 ‘그렇지 않은 말하기’로 나눌 수 있고, 나는 후자에 해당하는 건 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특정 업종에 속해 일하면서부터 내 말하기는 ‘슬랙화’되어 있어서 결론이 앞에 근거가 그 뒤에 불렛 포인트고 따라붙고, 쓰고 난 뒤 ‘(편집됨)’을 거쳐 누군가에게 이해되기 위한 검열과 찍히는 이모지와 댓글로 그 영향력을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기본값이 되었다. 그게 좀 더 길어지고 시각적으로 보여줄 게 있다면 ‘노션’이 되거나, 정 필요하면 미팅을 잡아 해당 내용을 직접 발화하기도 했지만 그건 브리핑이나 피칭에 가깝지 대화라고 보긴 어렵다. 정리되어 있는 생각으로 빠르게 임기응변하는 것. 그게 말하기의 기본이기에, 기술적 말하기가 마치 이성적인 말하기이고 나는 감성적 말하기를 하고 싶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기술적 말하기가 아닌 말하기는, ‘기술’의 필터에 좀처럼 걸리지 않거나 걸러지면 의미를 잃는 말들에 가깝다. 예를 들어 이제 나는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거나,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면 굳이 먼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럴 때 무리를 하면 대부분 실수를 하고 후일의 약점이 되곤 한다. 사회화되면서 기본이 된 이 태도는 영리하고 매끈하게 인생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너무 매끈해져서 재미 없는 인생을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고 나면, 집에 돌아가 다시 생각하는 일이 과거에는 있었는데 이제는 없다. 그럴만한 에너지도 집중력도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결정은 더는 생각하지 않고, 시간을 쓰지 않는다는 결정과 동일한 의미가 되었다.

나는 요 몇 년 매우 가까운 지인들만 만났다. 오래 알았으니 서로 간에 쌓인 역사가 꽤 되어 할 얘기가 없어도 과거를 반추하는 것으로 반나절은 그럭저럭 낄낄대며 웃을 수 있었다. 그 관계들이 편했고 좋았다. 그 몇년간 나는 그 관계에 동화되어 있었는데, 그건 좋은 일이기도 나쁜 일이기도 했다. 나쁜 것이 있으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놀라울 정도로 내가 전혀 몰랐던 점이었다.

관계가 형성한 문법 안에서 세태를 바라보다 보니, 나의 생각이나 검정을 의탁하는 일이 잦았다. 그만큼 무뎌지는 것도 있었다. 불편함을 무릅쓰지 않는 것. 관계의 온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 그 온도감이 내게는 차갑거나 뜨겁거나 혹은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

나와 비슷한 고민을 누군가는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릴스에서 보았던 어느 여자는, 내가 부모님과 보낼 수 있는 여름이 이제 서른 번도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메릴 스트립은 자신에게 왔던 캐스팅 제안을 거절하고 가격을 두 배로 불렀던 것이 쉰네 살이 되어서야 처음 했던 일이었고, 그제야 내가 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는 것에 놀랐다고 했다. 어느 저녁 식사에서 나는 반추는 메타인지가 아니라는 짧지만 강렬한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말로는 친구가 아닌 사람과 교류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도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정리를 해본다.

멋진 말이어야 해서가 아니라, 그 말에 내 행동이 담기지 않아 그 이상 명료하게 말할 수 없다. 결국 말하는 연습은 말뿐인 연습이 아니라, 말로 시작하는 무언가의 연습이 될 것 같다. 교류하기. 별것 아닌 이 단어를 찾아 결심하기 위해, 생각이 필요 이상으로 길었다. 교류의 뜻이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섞여 흐른다'는 뜻이어 새삼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 근원이 다른데, 무리를 짓고 안정을 찾는 본능 때문에 한 마음 한 뜻으로 같다고 착각하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근원은 철저히 다르고, 한 마음 한 뜻은 수사적인 표현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교류가 가능하고, 필요하다. 정말 너와 내가 근원이 같았다면, 애초에 우리는 친구일 이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