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틴더로 매치가 됐다. 나 남자 누구 만나. 근래 입버릇이 된 이 말은 정말 절박해서 외친다기보다, 봉산탈춤 말뚝이가 하는 추임새에 가깝다. 아, 이 양반들 어찌 듣는지 모르갔소. 아, 나 남자 누구 만나. 일단 이 말을 뱉으면 이상하게 으쓱, 어깨가 들리며 나의 외로움으로 킬링 벌스를 뽑아내 한번 거나하게 웃길 수 있을 거 같다. 외로운데, 진지하게 외로워지고 싶지 않다. 그러니 웃기는 일에 진심이 된다.
틴더의 법도 상, 우린 사는 곳과 취미, 좀 서두르면 성향을 물어도 직업을 바로 묻진 않는다.
“무슨 일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질문의 낯선 타이밍에 주춤한 나는 대답을 고민한다. 그냥 심드렁하게 대꾸하면 되는 일을 꼬아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문제. 남자 못 만나는 이유의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작은 아씨들 중에서도 하필 조를 고른 줄은 모를 남자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전 변호사예요. 내 광대가 절로 올라가며 머릿속에 회심의 유머가 떠오른다.
2.
데이팅 앱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현이 있다. ‘저와 비슷한 분 찾아요’ 이건 크게 두 가지 용례가 있다. 첫째, 근육, 베어, 스탠 등의 워딩을 피해 사진 속 나와 비슷한 몸을 찾는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하여, 덜 세속적으로 보이는 효과가 있다. 둘째, 나와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찾는다는 의미로 주로 사진 속 자신이 있는 장소나 옷차림에서 유추해 내게끔 하는데 주로 ‘주쉬직’과 함께 쓰인다.
’주쉬직‘은 주말에 쉬는 직업이란 의미로, ’나 역시 주말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의중을 표현한다. 언제인가부터 등장한 이 줄임말로 인해 이와 반대되는 상황의 사람들은 ‘스캐쥴 근무’ ‘3교대 근무’와 같은 식으로 자신의 업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이 말이 싫다. 주쉬직은 자연스레 ‘주쉬하지 못하는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일 중 상당수가 주쉬직을 대상으로 서비스되는 일들이다. 무엇보다 주말의 개념이 노동의 탄생과 함께 생겨났기에 더욱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럼 데이트 해야하는데 한 명은 주말에 쉬고 한 명은 주말에 일하면 어떡하라고요. 그럼, 자본주의에 철퇴를.
3.
잠깐 딴생각에 빠진 나는 직업 대신 ‘봄날의 마르크스를 좋아하세요?’라고 치려는 것을 꾹 참는다. 어쨌든 나는 변호사인 이 남자와 만나기로 한다. 커피를 마시기로 한다. 상대에 확신이 없을 때는 커피 한 잔이다. 캐쥬얼하게 만나, 캐쥬얼하게 칼퇴도 가능하다. 만날 날짜를 정하고 난 뒤 친구와의 카톡방에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나 변호사 만나. 이 남자 붙들고 상향혼할게.”
다들 웃는다. 상향혼을 어디에선가 주워들었을 때 나는 꼭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직업, 조크 프론티어의 이름을 걸고. 그런데 뒷맛이 껄쩍지근해진 나는 그 의미를 찾아본다. 상향혼은 국립국어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나무위키에(그럼 그렇지) 제법 상세히 정의가 적혀있다.
“승강혼(상향혼)은 승혼(hypergamy, 상향혼)과 강혼(hypogamy, 하향혼)을 합쳐 일컫는 말로, 부부의 한쪽이 높고 낮음을 뜻하는 말이다. 반대 혼인은 동질혼 이 개념에는 사회적 신분과 지위뿐 아니라 외모와 성격 같은 성적 자본도 흔히 포괄된다.“
커뮤에서 떠돌던 신조어인 줄만 알았건만 힌두교 카스트제도에서의 관습에서 비롯된 말이라니 역사가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위키 아래 단락에 꽂혔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여성과 결혼한다고 해서 남성의 지위가 크게 낮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가 높은 결혼을 승혼(hypergamy)이라고 하고 여성이 높은 결혼을 강혼(hypogamy)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하이퍼가미’는 위로 가는 결혼이란 의미로 특정 성별을 지칭하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결혼 패턴에서 여성들이 주로 상향혼을 추구하는 경향을 일컬을 때 주로 사용된다. 아래로 가는 결혼인 ‘하이포가미’ 역시 주로 여성이 경제적으로 더 낮은 배우자와 결혼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계급 이동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니. 내뱉은 농담의 뉘앙스가 ‘주쉬직’처럼 껄끄러워진다.
4.
상향혼을 떠올린 이유는 직업 때문만은 아니었다. 데이팅 앱 속 각자의 프로필의 톤 앤 매너에서 넘을 수 없는 계급의 차이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틴더 프로필은 ‘호캉스’ 사진이었다. 그리고 블랙 수트로 드레스 업하고 파티인지 공연장인지에서 찍힌 사진.
내 프로필의 첫 사진은 동네 개천인, 보문천에서 친구가 필름 카메라로 찍어줬다. 그 카메라에는 친구의 애인이 구해 온, 러시아제 렌즈가 장착되어 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소련 시절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렌즈를 바라보는 개천의 나는 입을 벌리고 있다. 주걱턱을 덜 나와 보이기 위해 입을 벌린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사진 하나에 말이 왜 이렇게 많을까. 내 사진이니까. 그리고 원래 개천에는 구구절절 사연이 빠질 수 없는 법이다.
농담은 풀이가 길어질 때 삶의 비의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실패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는 남자와 커피를 마신다. 우리는 실물을 보자마자 서로의 얼굴에 스친 실망의 기운을 감지한다. 약 30분 예의상 대화를 나눈 뒤 빠르게 헤어진다. 내 상향혼은 농담으로나 현실로나 실패한다.